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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가져갔다는 사실만으로 시작된 하루

나는 Canon EOS 30D를 들고 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촬영을 시작한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실제로 셔터를 누르지 않아도, 카메라가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순간부터 판단은 계속 이어진다.

 

이 카메라는 이미 오래된 디지털 DSLR이고, 지금의 생활 속도에 자연스럽게 맞춰 움직이는 도구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카메라를 사용할 때마다 결과보다 과정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오늘 이 카메라를 꺼낼 수 있을지, 아니면 끝내 가방 안에 남겨두게 될지에 대한 판단이 하루를 따라다닌다.

 

그날 나는 아이들과 외출을 하면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특별한 촬영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 카메라가 어떤 선택을 만들어낼지 확인하고 싶었다.

 

Canon EOS 30D를 챙긴다는 행위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을 동반한다. 지금의 일정 속에서 이 카메라를 꺼낼 여유가 있는가, 혹은 그 여유를 만들 의지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Canon EOS 30D를 가방에서 끝내 꺼내지 않았던 하루

꺼낼 수 있는 순간과 꺼내지 않는 선택

외출을 시작한 초반에는 카메라를 꺼낼 수 있는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아이들이 잠시 멈춰 선 순간도 있었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가방을 열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흐름이 바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카메라는 꺼내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은 곧 아이들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날 여러 번 가방 끈을 만졌다. 카메라가 들어 있는 쪽 어깨로 무게가 느껴질 때마다, 꺼낼지 말지를 잠시 고민했다. 그 고민은 짧았지만 반복됐다. 이 반복이 바로 이 카메라를 사용하는 경험의 핵심이다.

 

찍을 수 있는 장면보다, 지금 꺼내도 되는지를 먼저 판단하게 된다. 이 판단은 촬영 기술과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아이 하나는 가방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물었다. 본인이 들어 주겠다고 한다.
그 질문 하나로 나는 더 이상 가방을 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가방 안에 있는 카메라가 만드는 압박

Canon EOS 30D는 가방 안에 있을 때조차 존재감을 드러낸다.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이동할 때마다 무게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 무게를 불편함으로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이 무게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확인시켜주는 기준이 된다. 오늘은 사진보다 이동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카메라는 가방 안에서 계속 알려준다.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하루에서 나는 멈추는 선택보다 이어가는 선택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 선택은 포기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결과다.

 

나는 그날 사진을 찍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지 않는 쪽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을 뿐이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촬영을 포기했다는 감정이 아니라, 촬영이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용하지 않은 시간이 남기는 기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가방을 열지 않았다. 하루가 끝나갈수록 카메라를 꺼낼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아이들이 피곤해졌고, 나 역시 하루의 마무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Canon EOS 30D는 끝내 가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카메라는 그날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사용되지 않았지만, 판단에서는 계속 존재했다.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그날의 선택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게 됐다.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꺼내지 않기로 한 순간들이 어떻게 이어졌는지가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 카메라는 결과물이 없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남긴다. 찍지 않은 사진들이 기억 속에서 더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벽에 남기는 확인의 시간

아이들이 잠든 새벽, 나는 가방을 열어 Canon EOS 30D를 확인했다. 전원은 꺼진 상태 그대로였고, 스트랩은 접힌 채로 남아 있었다. 이 모습은 그날의 판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이 카메라는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은 실패나 아쉬움으로 남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생활 속에서 어떤 선택이 자연스러운지를 확인한 결과처럼 느껴졌다.

 

앞으로의 기록에서는 이런 하루들이 더 자주 등장할 것이다. 사진을 찍은 날보다, 찍지 않은 날의 판단을 더 많이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Canon EOS 30D는 여전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도구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선택을 드러내는 도구에 가깝다. 가방 안에 남아 있던 하루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 글은 사진 결과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이 글은 오래된 카메라가 현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지 않는 선택으로 이어지는지를 남긴 사용성 기록이다.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하루에서 나는 많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 대신 어떤 순간에 카메라를 꺼내지 않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확인했다. 이 확인은 이후의 기록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꺼낼 것이고, 어떤 날에는 끝내 꺼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우연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기준이라는 점이다.

 

Canon EOS 30D는 그 기준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도구다. 그래서 나는 이 카메라를 계속 가방에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