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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Canon EOS 30D를 들고 같은 길을 다시 지나갔다. 나는 그 길을 새로운 출사지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 길을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생활 동선으로만 알고 있었다. 낮에는 더더욱 특별하지 않은 길이었다.

 

나는 낮에 그 길을 지나갈 때, 주변을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시간이 달랐다. 그날은 해가 빠르게 내려가는 시간이었고, 길은 낮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변화를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상태로 출발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그 변화가 내 판단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카메라를 가방 깊숙이 넣지 않았다. 나는 카메라를 손에 들거나 가방 입구 가까이에 두었다. 나는 그 배치 자체가 내 태도를 드러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숨기면 카메라가 없는 하루처럼 행동하게 된다.

Canon EOS 30D를 들고 같은 장소를 다시 지나갔던 날

나는 카메라를 가까이 두면 카메라가 질문을 던지는 하루를 보내게 된다. 나는 그날 후자를 선택했다. 나는 그 질문이 실제 촬영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날에는 사진 파일보다 조건이 더 정확하게 남는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움직이던 시간에도 길은 계속 바뀌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걸음이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아이의 걸음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나는 그 변화가 촬영 타이밍으로 연결되는 순간이 있고, 그렇지 않은 순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날은 후자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나는 아이의 움직임이 카메라를 부르지 않는 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채 걷기 시작했다.

 

같은 길이 다른 길처럼 느껴진 순간

나는 해가 내려간 뒤의 길이 낮의 길과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낮에는 눈이 전체 공간을 한 번에 읽는다. 하지만 어두운 시간에는 눈이 한 지점씩 읽는다.

 

나는 그 차이가 판단을 느리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빨리 결정하지 못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어 올릴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먼저 내 발걸음을 조정했다. 나는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나는 아이에게 빨리 걷자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속도가 오히려 내 관찰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길의 조명은 일정하지 않았다. 나는 조명이 밝은 구간과 어두운 구간이 번갈아 나타난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건물 사이에서 빛이 끊기는 구간이 있다는 것도 보았다. 나는 차가 지나갈 때 생기는 불빛이 순간적으로 바닥을 바꾼다는 것도 보았다. 나는 이 변화들이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합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장면이 합쳐지지 않으면 촬영이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그날 그 구조를 그대로 겪고 있었다. 아이도 그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아이는 특정 구간에서 발을 조심했다. 아이는 밝은 구간에서 속도를 올렸다. 아이는 어두운 구간에서 질문을 더 했다. 나는 그 질문이 사진과 상관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는 어디가 더 안전한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쪽이 더 어두운지를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카메라를 의식에서 완전히 밀어내면, 오늘의 기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카메라가 질문만 던지고, 내가 답을 보류하는 상태도 기록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같은 길을 다시 지나가면서, 내가 낮에 보지 못했던 지점을 알게 됐다. 나는 벽면이 어디에서 가장 거칠게 보이는지 알게 됐다. 나는 바닥이 어디에서 반짝이는지 알게 됐다. 나는 표지판이 어디에서 튀어나오는지 알게 됐다. 나는 이 발견이 촬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됐다. 발견은 촬영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늘은 확인하는 쪽으로 남기기로 했다.

 

손에 남는 무게가 동선을 바꾼 방식

나는 그날 카메라를 손에 쥔 시간이 길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걷는 동안 손목의 각도가 계속 바뀐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변화가 내 동선을 미세하게 바꾼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오른손이 피곤해지면 카메라를 왼손으로 넘긴다. 나는 왼손으로 넘기면 자연스럽게 몸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 작은 변화가 아이와 나의 위치를 바꾼다는 것도 안다.

 

나는 그 위치 변화가 촬영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안다. 그날은 그 영향이 촬영으로 이어지기보다, 촬영을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아이 옆으로 붙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반걸음 뒤에 섰다. 나는 그 위치가 아이의 걸음을 방해하지 않는 위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 위치가 촬영을 위한 위치가 아니라 동행을 위한 위치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그 위치에서 카메라를 들어 올리면, 아이가 뒤를 돌아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그날 그 가능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나는 그 상태가 무너지는 순간, 그날의 기록은 사진 중심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길을 지나며 몇 번 카메라를 올릴 뻔했다. 나는 그때마다 손이 먼저 멈췄다. 나는 셔터를 누르기 전에 내가 어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빛이 더 고르게 들어오는지 확인했다. 나는 아이의 움직임이 더 안정되는지 확인했다. 나는 주변이 덜 복잡해지는지 확인했다. 나는 그 확인 과정이 길지 않았다는 것도 기억한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짧게 확인했고, 바로 내려놓았다. 나는 그 짧은 확인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날의 사용 기록이라고 느꼈다. 나는 이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촬영을 한 번 하면 그다음 행동이 생긴다는 것을 안다. 나는 촬영을 하면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안다.

 

나는 촬영을 하면 다시 촬영할지 말지 검토하게 된다는 것도 안다. 나는 그날 그 검토 단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아이가 지루해지는 순간이 빨리 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그 지루함이 카메라 때문으로 남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동선을 바꾸는 쪽으로 쓰지 않았다. 나는 동선을 유지하는 쪽으로 카메라를 붙잡고 있었다.

 

조명과 소음이 만든 멈춤의 규칙

그날의 길은 소리도 달랐다. 낮에는 사람 소리와 차 소리가 섞인다. 하지만 그 시간대에는 소리가 더 또렷해진다. 나는 멀리서 오는 차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건물 사이를 지나갈 때 발소리가 바뀐다는 것도 느꼈다. 나는 아이가 바닥을 밟는 소리로 지금 구간이 어떤지 알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이 소리들은 촬영을 유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멈춤 규칙을 바꿨다. 나는 소리가 커지는 구간에서는 카메라를 더 낮게 두었다. 나는 소리가 작아지는 구간에서만 카메라를 다시 의식했다. 나는 그 규칙이 내게 자연스럽게 생겼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었다.

 

조명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공조명이 바닥을 일정하게 비추지 않는다는 것을 봤다. 나는 조명 아래에서는 바닥의 밝기가 갑자기 올라간다는 것도 봤다. 나는 조명 밖에서는 윤곽이 급격히 흐려진다는 것도 봤다. 나는 이 변화가 사진을 더 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그 유혹을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내 생활 기록에서 “극적”이라는 단어가 쉽게 주도권을 잡는 순간을 경계하고 있다. 나는 극적인 사진을 만들려고 하면, 아이와 함께 걷는 시간이 장면 제작 시간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의 행동은 그날도 자연스러웠다.

 

아이는 조명 아래에서 잠깐 속도를 줄였고, 조명 밖에서는 손을 흔들며 앞서갔다. 아이는 그 행동을 사진 때문에 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 행동을 편의 때문에 했다. 나는 그 차이를 분명히 구분했다. 나는 사진을 찍으려고 아이의 행동을 ‘좋은 순간’으로 바꾸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행동이 일상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그대로 두었다. 나는 그 선택이 그날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결국 그날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결정을 단순한 불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그 결정을 환경이 만든 판단으로 기록했다. 나는 내 기분이나 의지가 아니라, 길의 빛과 소리와 동선이 만든 규칙이 내 행동을 바꿨다고 기억한다. 나는 이 지점이 지금까지의 기록들과 달라지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전에는 내 안의 기준을 중심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그날은 공간의 조건이 기준을 앞에 세웠다. 나는 그 전환이 내 기록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고 느꼈다.

 

사진 없이 남은 다음 행동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카메라를 가방에 넣지 않았다. 나는 카메라를 그대로 들고 들어왔다. 나는 그 행동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촬영하지 않았더라도, 카메라를 들고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들어오면, 다음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들어오면, 내 시선이 하루를 정리하는 방식이 바뀐다는 것을 안다.

 

그날 나는 사진 파일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의 길을 한 번 더 떠올렸다. 나는 어디에서 손이 멈췄는지 떠올렸다. 나는 어디에서 카메라를 올릴 뻔했는지 떠올렸다. 나는 어느 구간에서 소리가 커져서 카메라를 낮췄는지 떠올렸다. 나는 어느 구간에서 조명이 바닥을 바꿔서 걸음이 느려졌는지 떠올렸다.

 

나는 이 기억들이 사진 한 장보다 더 정확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그 사실이 내가 이 카메라를 다시 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에게 오늘 사진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사진이 없다는 사실을 사건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그날을 사진의 유무로 기억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그날을 “어두운 길을 조심해서 걸었던 날”로 기억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기억이 내 기록과 겹치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나는 아이의 기억과 내 기록이 서로 다른 층으로 남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꼈다.그날의 기록은 촬영 성과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날의 기록은 오래된 DSLR이 환경에 의해 어떻게 사용자의 행동을 늦추고 바꾸는지 보여준다.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지만, 그날의 사용은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같은 장소를 다시 지나갔고, 그 과정에서 내 행동은 환경의 조건에 맞춰 재배치됐다. 나는 이 재배치가 반복될수록, 내가 어떤 날에 셔터를 누르게 되는지도 더 분명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진이 없는 날도 이렇게 남긴다. 나는 그날 한 장도 남기지 않았지만, 빛과 소리가 내 손의 결정을 바꾼 순간은 또렷하게 남았다. 그래서 나는 사진 대신 조건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