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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아니라 확인으로 시작된 시간
그날 밤 나는 Canon EOS 30D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기다림이라는 시간은 항상 애매하다.
완전히 비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니다. 나는 그 애매한 시간에 카메라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 행동은 촬영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는, 오늘 하루의 흐름을 확인해 보려는 움직임에 가까웠다.
전원을 켜는 순간, 카메라는 조용히 깨어났다. 화면에 표시가 들어오고, 손에 익숙한 무게가 다시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뷰파인더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셔터를 누르지도 않았다.
그 대신 카메라가 켜진 상태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장면을 그대로 바라봤다. 이 상태는 지금의 나에게 꽤 익숙하다. 사용 직전이지만, 사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계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과 카메라의 위치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그 진행 상황을 살폈다. 질문이 나오면 답해줘야 했고, 집중이 흐트러지면 다시 붙잡아줘야 했다. 이 상황에서 카메라는 명백히 중심이 될 수 없었다.
Canon EOS 30D는 사용자의 집중을 요구하는 도구다. 반대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든 끊길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두 성격은 쉽게 겹치지 않는다.
아이 하나가 문제를 들고 와서 설명을 요구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카메라에서 시선을 떼고 아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카메라는 테이블 위에서 조용히 역할을 잃었다.
이건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생활의 흐름이 자동으로 우선순위를 정한 결과였다. 나는 이 장면에서, 지금의 나에게 사진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느꼈다.
숙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다시 카메라 쪽을 봤다. 전원은 켜진 채로 있었고, 화면은 그대로였다. 이 상태를 유지한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식했다.
나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전원을 껐다. 이 행동은 촬영을 포기하는 제스처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판단을 정리하는 동작에 가까웠다.
몇 번을 사진기의 전원을 켜었다 껐다 반복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가 깜빡이면서 그만하라는 신호를 준다. 한 번 더 카메라 후면 LED 창의 다이얼을 돌렸다.
Canon EOS 30D는 전원을 끄는 순간에도 분명한 감각을 남긴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사라지면, 하나의 선택이 마무리된 느낌이 든다. 나는 이 느낌을 기록하고 싶었다.
사진을 찍지 않았지만, 판단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전원을 켰다가 끄는 이 짧은 과정 안에, 지금의 생활 조건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전원이 켜진 채 머물렀던 시간의 의미
카메라의 전원이 켜진 상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Canon EOS 30D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전원을 켜 둔 채, 나는 그 카메라를 거의 보지 않았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시간이 비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지금의 생활 리듬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구간이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 질문이 나오고, 설명이 필요해지고, 다시 집중을 도와줘야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카메라는 중심이 될 수 없다. 전원이 켜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건 촬영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요구하는 집중의 방향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전원을 켜 두었다가 끄는 행동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시도와 확인에 가깝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카메라가 들어올 자리가 있는지 확인했고, 그 자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뿐이다. 이 과정은 사진 결과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남긴다.
어떤 조건에서 이 카메라가 생활의 중심에서 밀려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이 문단은 전원을 끈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설명이 아니다. 사용 직전에서 멈춘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분리해서 기록하기 위한 보강이다.
이런 기록이 쌓일수록, Canon EOS 30D는 단순한 촬영 도구가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어떤 선택이 우선되는지를 드러내는 기준점이 된다.
결과 없이 남는 사용성의 기록
그날 밤 나는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를 켰고, 켜진 상태를 유지했고, 다시 껐다. 이 과정은 결과물이 없다는 점에서 무의미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용성 기록이라는 관점에서는 충분한 정보가 있다. 이 카메라가 어떤 상황에서 사용으로 이어지지 않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간 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Canon EOS 30D를 다시 한번 봤다. 전원이 꺼진 상태였고, 그 모습은 하루의 판단이 정리된 결과처럼 보였다.
이 카메라는 여전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도구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사진을 찍지 않는 선택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사용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 글은 감정을 풀어낸 에세이가 아니다. 이 글은 오래된 카메라가 현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사용 직전에서 멈추는지를 기록한 사용성 문서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전원을 켰다가 끄는 행동, 그리고 아무 결과도 남기지 않은 밤. 이 모든 요소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나는 그 반복을 계속 기록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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