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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 30D는 그날 하루 동안 특별한 역할을 맡지 않았다. 이 말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촬영을 보류했다거나,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날 이 카메라는 어떤 판단의 출발점으로도 사용되지 않았다. 꺼내 놓았지만,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시 정리할 이유도 없었다.

Canon EOS 30D가 하루 동안 아무 판단도 요구하지 않았던 기록

 

그저 생활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아무 결론도 요구하지 않는 상태로 하루를 통과했다.이 상태는 지금까지의 기록들과 명확히 다르다. 이전에는 언제나 판단이 있었다. 찍을지 말지, 들지 말지, 아이에게 건넬지 말지 같은 선택들이 기록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이 카메라는 판단 이전의 상태로 남아 있었다. 나는 이 상태를 일부러 만들지도 않았고, 의도적으로 유지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태는 하루 종일 유지되었다.

 

사용도 방치도 아닌 애매한 위치

Canon EOS 30D는 2006년에 출시된 중급기 DSLR로, 8.2MP의 해상도와 마그네슘 합금 바디를 채택해 내구성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용자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이 카메라의 가치는 단순한 스펙보다는 ‘시간을 견디는 존재감’에 있다.

 

특히 이 글처럼 촬영 결과 없이도 존재만으로 영향을 주는 도구로서 바라본 접근은, 최신 기술 중심의 장비 평가와는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촬영을 강요하지 않는 디지털 카메라의 사례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기록이다.

 

Canon EOS 30D는 그날 가방 안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에 들려 있지도 않았다. 테이블 위에 잠시 놓였다가, 다시 다른 자리로 옮겨졌고, 또 다른 물건 옆에 놓이기도 했다. 이 이동에는 목적이 없었다. 촬영을 위해 꺼낸 것도 아니었고, 정리를 위해 치운 것도 아니었다.

 

이 애매한 위치가 중요했다. 보통 카메라는 명확한 상태를 갖는다. 사용 중이거나, 사용을 기다리거나, 보관 중이거나. 하지만 그날의 Canon EOS 30D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 애매함 때문에 나는 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판단의 대상에서 잠시 벗어났다는 의미다.

 

이 상태에서 카메라는 기능을 드러내지 않았다. 셔터도, 화면도, 조작계도 관심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물건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물건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를 만들지 않았다.

 

하루의 흐름 속에 섞여버린 카메라

그날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시간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이동이나 일정도 평범했다. Canon EOS 30D는 이 평범한 흐름 속에 섞여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중심으로 떠오른 것도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카메라의 또 다른 특성을 확인했다. 이 카메라는 존재감을 조절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드러내지도 않고, 스스로를 숨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용자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위치에 놓인다.

 

그날 나는 이 카메라에 아무 태도도 취하지 않았다. 촬영자로서의 태도도, 관찰자로서의 태도도 아니었다. 그 결과 이 카메라는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의 배경에 가까워졌다. 배경이 된 물건은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카메라는 하루 종일 아무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판단이 사라졌을 때 드러난 도구의 한계

흥미로운 점은, 판단이 사라진 상태에서 이 카메라의 한계도 함께 드러났다는 것이다. Canon EOS 30D는 스스로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 자동으로 꺼내지지도 않고, 자동으로 사용되도록 유도하지도 않는다. 이 카메라는 언제나 사용자의 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날처럼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 카메라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 점은 최신 장비와 확실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요즘의 기기들은 사용자를 다시 끌어당긴다. 알림이나 화면, 편의 기능으로 다시 개입한다. 하지만 Canon EOS 30D는 그렇지 않다.

 

이 한계는 단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카메라의 성격을 분명하게 만든다. 이 카메라는 사용자의 선택이 없으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날 이 카메라는 그 사실을 아주 조용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시간이 남긴 기준

그날의 기록에는 사진이 없다. 하지만 이 날이 기록으로 남겨질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판단이 없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판단이 없었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판단이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카메라의 기본 상태가 드러났다.

 

나는 이 날을 통해, 이 카메라를 사용할 때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한 단계 떨어질 수 있었다. 찍지 않아도 되고, 들지 않아도 되고,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도 사용의 일부라는 기준이 생겼다.

 

이 기준은 촬영의 질이나 결과와는 관계가 없다. 이 기준은 도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Canon EOS 30D는 판단이 있을 때만 작동하는 도구다. 판단이 없을 때는 그저 존재한다. 이 단순한 사실이 그날 하루를 통해 또렷해졌다.

 

이 기록이 지금 필요한 이유

이 글은 어떤 행동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 글은 어떤 선택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이 글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그대로 남긴 기록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기록은 지금까지의 글들과 겹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기록들은 모두 ‘어떤 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글은 순간이 없는 하루에 대한 기록이다. Canon EOS 30D는 그날 아무 판단도 요구하지 않았고, 나 역시 이 카메라를 통해 어떤 결론도 만들지 않았다.

 

이 기록은 그래서 필요하다. 사용성 기록이 결과와 선택만으로 구성된다면, 도구의 가장 기본적인 상태는 남지 않는다. 이 날의 기록은 그 빈칸을 채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하루에도, 이 카메라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남긴다.